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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 버트런드 러셀 본문

독서 관련/역사 철학 기타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 버트런드 러셀

sunyzero 2010. 5. 7. 18:11
버트런드 러셀

이 책은 20세기 지성이라고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이 각종 잡지나 단행본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으로서 여러가지 사회적 현상을 냉철한 회의주의자(skeptic)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인간인 이상 모든 사안에 대해서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러셀은 최대한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합리적 회의주의자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버틀란트 러셀 (푸른숲,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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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책 서문에는 "나는 왜 회의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메시지가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인간 본성의 2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우리 삶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자의 삶을 훼방놓고 싶어하는 파괴적 속성이다.

전자는 사랑, 기쁨 같은 것으로 표현되어지나 후자는 경쟁, 애국심, 전쟁으로 표출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전자를 지향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불완전한 세상은 모두가 러셀같은 사람이 되거나 그를 따를 수 있는 머리가 있는게 아니므로 후자가 곧장 발현된다. (이는 악의적 목적을 가진 똑똑한 몇몇이 언론과 획책을 이용해서 다수를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후자를 지향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점에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많은 내용을 써놓으면 읽는 사람이 재미없을테니 몇 가지 인상깊은 구절만 적도록 하겠다.


* 누가 착한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다. 이상적으로 착한 사람들은 담배,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숙녀들과 대화할 때처럼 같은 남자들과도 대화를 하며,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고 모든 문제에 의견이 올바르다.
그들은 악행을 건강하게 두려워하고, 죄를 벌하는 것은 힘들지만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학생들이 잘못된 가르침에 존경심을 품지 않게 사상이 위험한 교수들을 채용하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좁은 의미의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과연 선행을 더 많이 하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위에서 '착한' 사람을 설명했을 때의 말과 정반대이다. [착한 사람들의 악행 발췌]

- 러셀은 좁은 의미에서 착한 사람이 과연 사회적으로도 선한 행위를 고취하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착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을 재단하려고 하고 사회변화를 거부하며 순진하리만큼 단순하게 사회문제를 '착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

예로 중세시대에 착하고 인정이 많았지만 머리는 비었던 한 신부는 흑사병이 돌자 기도하자며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결과는 예상한대로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감염을 일으켜서 모두 죽었다.

비슷한 고민으로 담배를 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조금 더 나가서 풍기문란을 하는 사람은 악인일까? 정말 성실하게 살지만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서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문제가 아닐까? 

그러므로 예로부터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소리는 한마디로 헛소리다. 왜냐하면 착한 사람이란 정의가 너무 두리뭉실하기 때문이다.


* 환경의 영향
환경이 인격에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증오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 발췌]
(주: 사는 지역이나 친구들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 지배당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뜻이다.)

* 교육의 자율성에 대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는 각종 기관을 총동원하여, 뭣 모르는 아이들이 터무니없는 명제들을 믿도록 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으로 미심쩍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통치자들의 의지에 따르게끔 교육이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수많은 예 중 하나이다.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발췌]

  (주: 교육이란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 특히나 사상적인 부분에서 한가지만 고집하게 되면 "애국심"을 가장한 광기가 드러나게 된다.
실제로 한국의 상황은 참 암담하다. 사상적으로 붉은색에 대해서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주입교육으로 인해서 파시즘의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가 이지메를 하는 가학적 행동을 보인다. 새뮤엘 존슨은 애국심을 표방하는 자가 가장 악독한 악당이라고 했다.
)

과거로부터 이어온 일본을 예로 들어보자. 외국에서 보는 일본은 예의를 알고 양보를 하는 사람들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일본은 정체된 교육, 경직된 사고,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교육이 망쳐져 있는 나라이다. 입시교육의 폐해는 점수로 줄세우기 위해서 통일된 교육방침을 받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그럼으로 인해서 색다른 생각,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도 같은 폐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하루빨리 입시의 폐해가 사라져야 하는데...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깨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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