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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보유량 증가와 불황의 늪

sunyzero 2012.09.26 23:50

얼마전 뉴스를 보니 대기업의 현금 보유량 증가가 눈에 띄었다. 몇몇 기사와 통계를 살펴보니 확실히 늘고는 있는 것 같다. 그림을 보면 1년 사이에 현금 보유량이 50~60%까지 증가한 기업들도 있다. 


심지어 2010년에서 11년사이에는 보유 금액이 엄청나게 늘었다.(그리고 이때부터 심각한 불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현금 보유량이 늘면 왜 문제가 될까? 오히려 리스크에 대비하기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물론 불황이 오면 현금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현금 보유 의지가 오히려 불황을 불러오거나 가속한다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법칙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현금을 과다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세금 제도와 여러가지 장치로 소비를 촉발시킨다.



1. 현금 보유는 혼란의 시작

그러면 현금 보유가 왜 불황이란 혼란의 시작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현대 경제학에서 가장 금기시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소비를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금 보유를 늘리기만 하는 행위라고 한다.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수 수요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내가 소비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돈을 벌 수 없다. 입장을 바꿔보면 다른 사람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내가 돈을 벌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이렇게 수요가 줄어 서로 돈을 벌지 못하게 되는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형 불황이다. 무려 20여년 동안 일본이란 경제 대국을 끝없이 추락시킨 것이 바로 내수 수요의 부족이었다.


내가 돈을 번다는 것, 즉 소득이 생긴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지출을 한다는 뜻이다. 즉 소비가 없이는 소득도 없다. [1]


예를 들기 위해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행성을 상상해보자. 이 행성에는 4개의 회사가 있다. 옷을 만드는 어패럴 회사, 제과회사, 과수원, 스팸 회사가 있다. 각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다른 회사가 생산한 제품을 사서 먹고 입는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스팸 회사의 직원들이 더 많은 현금을 모으려는 탐욕을 부렸다. 그래서 다른 회사의 제품을 사는 것을 줄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스팸 회사 직원 중 몇몇은 자기 집앞 공터에 야채를 심어서 식재료를 조달하고, 옷도 나뭇잎으로 만들어서 입는다고 치자.


이쯤되면 제과 회사, 어패럴 회사, 과수원은 점점 수익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의 연봉도 깍아야 할테고 몇몇은 정리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제과회사나 어패럴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은 결국 스팸 사먹을 돈이 없어서 스팸 회사도 매출이 줄어든다.


결국 스팸 회사의 수익이 감소하게 된다. 이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스팸 회사 직원들은 매일 재고로 쌓여있는 스팸만 먹고, 제과회사 직원도 재고창고에 있는 쿠키만 먹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소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수요 부족으로 인한 불황은 경제 구성원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교환(수요와 공급에 의한)이 없는 경제 시스템은 암흑이나 마찬가지이다.



2. 통화론과 그레이트 캐피털 힐 탁아 조합의 위기

이런 상황이 재밌는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1977년 조앤 스위니(Joan Sweeney), 리처드 스위니(Richard Sweeney)는 금융회보(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지에 "통화론과 그레이트 캐피털 힐 탁아 조합의 위기(Monetary Theory and the Great Capitol Hill Baby-Sitting Co-Op Crisis)"라는 제목으로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2]


이 논문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맞벌이 부부들이 집단으로 탁아 조합을 조직했는데, 각 부부들은 처음에 동일한 쿠폰을 발급받고 이 쿠폰을 이용하면 다른 한가한 부부에게 아이를 1시간씩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싸한 제도였지만 이내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에 탁아 조합은 쿠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매우 적은 수의 쿠폰을 발행했는데, 맞벌이 부부들은 언제 생길지 모르는 위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단은 충분한 쿠폰을 확보하려고 했고, 그 결과 다른 부부가 먼저 아이를 맡기러 오길 기다린 것이다. 즉 조합원들은 쿠폰 지출을 너무 신중하게 꺼려했고 모든 조합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쿠폰을 벌 기회만 노린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외출하지 않고 매일마다 우울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 투성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쿠폰을 더 지급하였다.(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또한 한달에 최소한 두 번은 반드시 외출하라는 규칙을 제도화 한 것이다. 그 결과 조합원들은 쾌적한 외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외출 자체를 싫어하는 조합원들이 계속해서 쿠폰을 모으기만 했고, 전체 쿠폰의 유통량이 줄어들자 조합은 다시금 추가 쿠폰 발행(경기 부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오히려 누구도 쿠폰 1장에 1시간동안 아이를 맡으려고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탁아소 이야기지만 사실상은 경제의 문제를 비유로 보여준 것이다.



3. 현금 보유에 대한 해결책

위에 탁아 조합 처럼 현금 보유가 늘어나 시장에 현금 유통량이 적으면 정부는 화폐를 좀 더 찍으면 된다. 혹은 현금 보유자들이 현금을 쓰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증세나 소비를 늘릴 경우 세금을 돌려주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를 경기 부양이라고 한다. 


즉 경기 부양은 정부가 대신 돈을 써주는 것이다. 각종 대규모 사업을 벌이거나 저소득층에 복지 혜택을 확대하여 소비를 촉진 시키는 시도가 된다. 내수 소비를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복지 확대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결국 복지 확대도 민간대신 정부가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발이 존재한다. 


화폐를 더 찍어내면 현금 보유자의 현금 가치는 하락하므로 현금 보유를 많이 한 부유층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그들은 전심전력으로 보유한 현금 자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화폐를 더 찍지 못하도록 막게 된다.(혹은 현금보다 부동산같은 자산의 비중을 늘리기도 한다. 이는 거품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복지 포퓰리즘, 조세 저항, 현금 이외의 자산 투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화폐의 추가 발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심각한 불황에 빠지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더군다나 정부의 의지가 약한 정책은 시장의 불신만 얻게되고, 시장은 저항하거나 투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이 성공하고, 투기가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기술발전이나 생산적인 경제 활동은 점차 위축된다.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노력하려고 하겠는가?


예로 일본을 보자. 일본은 과거 거품이 꺼지면서 수요가 부족해졌다. 하지만 정부는 현금 유동성을 늘리지 않았고 적절한 경기 부양에 실패했다. 의지가 약한 정부는 찔끔찔금 경기부양을 했고, 그 결과 20여년을 넘게 불황에서 허덕거리고 있다.


또한 불황은 출산율의 감소를 가져와서 장기적으로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특히 일본형 경제 시스템을 가진 한국은 내수 시장의 수요가 작고 수출로 벌어먹고 있는데, 수출이 둔화되면 즉각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사실 회사의 입장에선 외국인이 제품을 사주던, 내국인이 제품을 사주던 상관은 없다. 제품이 팔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수출 시장은 변동이 크기 때문에 수출 감소로 인한 불황을 피하려면 내수 시장의 크기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좋다. 그런 면에서 일정 규모의 시장경제가 달성되면 무조건 저축하거나, 아끼는게 능사가 아닌 것이다.



낙수효과출처 : 구글


다른 해법도 존재한다. 현금 보유자들에게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도록 해주면 넘치는 돈을 주체 못해서 쓸 것이라는 소리다. 이를 낙수 효과,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라고 부른다. 그림처럼 위에서 술을 부으면 아래로 넘치므로 상류층에서 시작된 돈 잔치가 중산층, 하류층에게도 일정 비율 흘러간다는 뜻이다.


이 주장에 근거하여 공급중시론자(supply sider)들과 한국의 모피아들은 감세를 통해 현금 보유를 더 늘려주면 트리클 다운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현금 보유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그들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현금을 늘려주다가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재정이 파산하는게 더 빨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금가치의 하락은 부동산 버블을 가져와서 2차, 3차의 문제까지 발생시켰다.


그래서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강제적으로 현금 보유를 막기 위해 원천징수 세율을 올리고 환급 비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감세 정책의 신화를 굳건하게 믿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상황이다.


현금 보유를 막고 소비를 진작시키고, 증세를 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기에, 이 저항을 꺽기 전에는 불황의 늪으로 기어들어가는 한국을 어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 John Maynard Keynes. 1935.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2] Paul Krugman. 1994. Peddling prosperity - Economic Sense and Nonsense in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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