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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sunyzero 2011. 7. 26. 14:21


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전쟁으로읽는세계사세계의역사를뒤바꿔놓은스물세번의전쟁이야기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 세계사이야기
지은이 정미선 (은행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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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이익추구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발생하는 필연 혹은 우연적 사건이다. 이건 판에 박힌 클리셰지만 달리 설명할 말이 없는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인류는 끊임없는 반성과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대 전쟁에서 현대 전쟁의 양상만 봐도 최악을 피하는 전쟁으로 점차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현대전중에 세계대전 같은 경우는 최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고대에 비하면 최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다.)

* 전체적인 평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서 역사 배경 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더군다나 사진과 지도, 도표들이 잘 나와있기 때문에 이해하기에도 편리하다.

다만 적은 페이지에 많은 분량을 넣다보니 교과서처럼 원인과 결과에 치중하고, 그 과정은 좀 얼렁뚱땅 넘어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 매니아用 책이 아님을 명심하자. 이 책은 그냥저냥한 전쟁 역사 입문용 서적이다. 전쟁의 이면에 담긴 철학이나 이념적 충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없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이 책은 정말 입문용이다. 입문용 서적을 가지고 왜 고급 내요인 철학/이념이 없냐고 투덜거리는 것은 초등학교 산수책에 왜 미적분이 나오지 않냐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다.

1. 전투와 전쟁
(전투가 모여서 전쟁을 만든다.)
전쟁에는 큰 흐름을 결정하는 크리티컬한 전투가 있기 마련이다. 텔레폰네소스 전쟁에서는 아고스포타미 전투가 그러했고, 중국의 삼국전쟁에서는 적벽대전이 그랬다.

이런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전투는 사소한 실수에서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고, 자연(날씨 같은)의 도움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고, 리더 한 사람의 지략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전쟁을 이해하려면 전투에서 사람(주로 리더), 환경, 결정적 실수 같은 것을 복합적으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이 겨룬 2차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는 진주만 전투,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를 보기보다 일본군 인사 지휘체계의 약점을 봐야하고, 나폴레옹과 프랑스 대혁명을 이해하려면 당시 재정적 위기를 초래했던 과도한 소비와 전쟁, 부르주아지들이 세금을 내지 않았던 과도한 특권을 이해해야 한다. 즉 나폴레옹이 아니었더라도 프랑스 대혁명은 누군가가 시대적 사명의 바턴을 이어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듯이 전쟁은 시대적 사명으로 인해 마침 그 자리에 가장 적합했던 누군가가 받은 경우가 많으므로 특정 위인의 업적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사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은 어떤 개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따라서 그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결국 누군가가 앉아있던 것일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부르는 많은 위인이나 핵심적인 인물들은 페르소나로만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내부적인 것들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먼저 이 책을 통해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보자. 그런 뒤에 그리스 전쟁사를 본다든지, 갈리아 전기, 태평양 전쟁사 같은 것들을 차분하게 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2.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쟁의 결과는 목적에 따라서 상이하게 나뉘는데, 이익을 위한 전쟁인지 아니면 이념의 충돌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와는 색다르게 리더십이 강하고 히어로같은 망상주의자가 나타나서 제국을 건설하는 통일전쟁도 있기는 했다.

[이익을 위한 전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도 결과에 따라서 승자가 패자를 흡수하는 방향도 있고, 아니면 아예 멸망을 시켜서 씨를 말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흡수하는 경우는 상대편의 문화적, 혹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경우이고, 멸망을 시키는 경우는 상대의 땅만을 필요로 하거나 혹은 이주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그것도 아니면 후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멸망시키는 케이스가 있다.

예로 고대에는 생산성이 높지 못해서 자원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상대의 땅을 모조리 빼앗아야만 했으므로 승자의 행동은 패자의 씨를 말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승자는 패자의 인적 자원중에 전사가 될 남자는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흡수하거나 팔아버렸다.(아무래도 승자쪽도 인적 손실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노예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승자는 보통 남자를 모두 죽이고나서 여자를 성적 노예로 전락시킨 경우가 많았다.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은 정복자의 피를 섞는 목적이기도 하고, 해당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종속관계가 되기 때문에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런 야만적 습성은 현재도 아프리카에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중세쯤 와서는 연합을 통해서 외교나 정치, 권모술수가 판을 쳤기 때문에 상대의 땅을 빼앗기보다 조공을 받는 수준, 혹은 배상금을 물리는 수준을 더 좋아했다.(물론 상대방이 심하게 반항하면 고대처럼 모조리 죽이는 방법 밖에는 없었지만...)

[이념의 충돌]
이념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더 파괴적인 전쟁을 가져왔다. 이건 상대방을 말살하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든지, 혹은 세계를 구한다든지 하는 명목으로 철저하게 상대방을 말살하려고만 했다.

이런 전쟁에서는 지극히 소모전으로 가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보니 전쟁에 패한 측도 살기 위해서 끝까지 반항을 했고 승자쪽도 지지부진한 말살전에서 자원소모를 하다가 나가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전쟁의 후유증은 세계의 세력판도나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발전이 아닌 퇴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e.g.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

즉 이익을 위한 전쟁으로는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고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이념의 충돌은 세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념의 충돌로 생기는 인적 손실은 빠르게 보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류역사의 퇴보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웃긴 것은 인간이 많이 죽으면 당시 사회의 시스템을 받치는 한 축이 붕괴되어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념과 이익이 혼재된 충돌]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전쟁은 이익을 위해서, 즉 경제적인 모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합의가 강해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현대에 와서는 이념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국지전인 전투가 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2차대전 이후로는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단기간에 끝나는 전투, 그리고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레지스탕스 정도? 결국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3. 전쟁이 과연 악의 축일까?
평화를 사랑하자던지 혹은 전쟁이 싫다던지 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어차피 갈등이 극에 달해 표출되는 에너지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을 보면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전쟁의 발발원인이 되는 환경이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가 고민해야 하는 일,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고민해야 할 일은 전쟁을 소모적으로 하기보다는 외교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법, 세련된 방법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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